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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3 : 벤야민의 사유

"말이 살이 되었다": 벤야민과 아렌트의 폭력비판론

by 상겔스 202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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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공개본은 완성본이 아니다. 번역 문구나 단어에 수정이 필요하다. 참조용으로만 읽기 바란다. 
* 참고로 <미국 독립선언문>에 대한 자크 데리의 분석은 <법의 힘>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 2024년 3월 12일. 

 

"말이 살이 되었다"

: 벤야민과 아렌트의 폭력비판론

아오키 다카시(青木崇) 지음 

https://hermes-ir.lib.hit-u.ac.jp/hermes/ir/re/78371/shakaikg0140400010.pdf

왜냐하면 시작은 그것이 그 자신의 원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신 같기도 하고, 그 신이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고, 사람들의 행위를 고무하는 한에서, 모든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 『혁명에 대하여』, 제5장, 플라톤의 『법률』에 등장하는 한 구절에 대한 아렌트의 번역 
─ 확실히 모든 인간이 개별적으로 자유의 원리에 따라 법적 체제 하에 살기를 의욕하더라도(모든 인간의 의지의 배분적 통일), 이 목적을 위해 불충분하며, 나아가 모든 인간이 함께 어울려=합심하여 이 상태를 의욕한다(합일된 의지의 집합적 통일)라는 어려운 과제의 해결이 필요하며, 그것에 의해 비로소 시민적 사회 전체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단독으로 공동사회적 의지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개별적인 의지의 차이를 넘어서, 더 나아가 이를 합일시키는 원인이 덧붙여져야 한다. 위와 같은 이유에 의해 이념을 (실천에서) 실행할 때는 법적 상태의 개시는 폭력에 의한 개시 이외에는 기대할 수 없으며, 공법은 이러한 폭력의 강제에 기초하여 나중에 성립하는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 영구평화를 위하여」[주1]

[주1] 번역은 칸트 전집 14』 「역사철학논집(292-293)을 참조했으나, 이 대목에서 권력으로 번역한 Gewalt라는 단어는 공법에 선행하는 Gewalt로서 폭력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기에, 필자의 책임으로 그렇게 바꿔 번역했다. 원전은 아카데미판 제8권을 사용했다(A371). 또 이 구절의 해석 및 폭력이라는 번역에 대해서는 網谷壮介(2018)를 참조했다.

   

들어가며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1968)에 수록된 벤야민론을 제외하면 한나 아렌트는 망명 시절의 절친한 친구 발터 벤야민에 대해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꺼리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미국으로 피신시키지 못한 친구의 사색을 아렌트가 잊어버렸다는 것은, 친구의 유작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의 출판을 둘러싼 분주함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주2] 실제로 벤야민의 사색을 추적한 흔적은 그 저작의 곳곳에 산재해 있다.[주3] 이 글이 시도하는 것은 그러한 흔적의 하나를 아렌트의 혁명에 대하여(1963, 1965)에서 찾아보는 것이다.[주4]

      [주2] 이 아렌트의 분주함에 대해서는, 柿木역사의 개념에 대해서의 아렌트 초고의 번역과 함께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cf. 柿木 : 2021, 250-268).
      [주3] 예를 들면, 벤야민은 폭력비판론에서 삶의 신성함이라는 도그마의 근원은 탐구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GS. II-1 : 202)라고 논하고 있으며, 이 과제는 아간벤이 호모 사케르프로젝트에서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렌트의 활동적 삶』 「44. 최고선으로서의 삶에서도 확실히 계승되고 있다(cf. 青木 : 2021). , 아렌트의 벤야민론에서 명시되는 진주 채취에 대해서는 다음의 연구를 참조할 것(cf. 青木 : 2022).
       [주4] 이 글에서는 혁명에 관하여의 영어판(1963)과 독일어판(1965)을 병용하며, 인용할 때는 쪽수를 병기한다. 다만, 영어판과 독일어판에서는 내용은 같더라도 표현이나 기술이 변화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그러한 차이가 내용의 해석에 중요한 경우만 각주에서 그 요지를 언급한다.

발터 벤야민은 언어 일반 및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1916)라는 수수께끼 같은 논문(이하 언어 일반론으로 약칭)에서 인간 언어의 타락을 이야기했다. 그 논의는 자칫 단순한 신학적 논의로도 여겨질 수 있지만, 언어의 힘과 가능성을 포함해 여러 철학적 통찰이 풍부하다. 그러한 타락한 인간의 언어에 남아있는 힘을, 벤야민은 번역자의 과제(1921)를 시작으로, 그 이후의 여러 작품에서 고찰하고 있으며, 그 하나는 아마 폭력 비판을 위하여(이하 폭력비판론으로 약칭, 1921)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아렌트의 혁명에 관하여가 언어의 힘을 둘러싸고 이 폭력비판론에 응답한 것임을 보여줄 것인데, 이는 그 자체로 폭력비판론에 관한 일정한 해석의 방향성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벤야민이 타락한 언어에 아직도 남아있는 힘의 일단을 폭력비판론에서 논하고 있다면, 그것은 언어에 의한 합의나 양해, 나아가서 계약이라는 가능성으로서 파악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폭력에는 전혀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비폭력적인, 인간적 합의의 영역이 존재하며, 그 영역이란 이해(Verständigung)의 본래 영역, 즉 언어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GS. II-1: 192). 번스타인이 폭력(2013)에서 정리했듯이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에 대해서는 신적 폭력개념을 중심으로 이미 수많은 해석적 논의가 오갔으며, 이 해석적 논의와 접촉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들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 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어디까지나 폭력비판론혁명에 대하여를 가교하는 것을 통해서 타락한 언어에 여전히 남아있는 힘이나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것을 과제로 한다. 혹은 오히려 혁명에 대하여가 바로 그러한 힘이나 가능성을 가장 단적인 구체적인 예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벤야민의 폭력 비판론과 아렌트의 정치이론의 관련성을 놓고서는 이미 여러 연구가 있었고 간접적으로 이와 관련된 연구도 적지 않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도구적 행위와 정치적 실천을 구별했다는 점에서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높이 평가했지만 비슷한 평가를 1979년 벤야민론에서 신적 폭력개념에 대해서도 내렸다. 보니 호니그(1991)는 아렌트가 주목하는 미국독립선언문을 J. L. 오스틴에서 유래한 언어행위론의 틀로 해석하면서 이 시야를 개척한 것은 하버마스라고 하면서, 자크 데리다의 미국독립선언문과 대비했다(미국독립선언과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에 관한 데리다의 해석이 법의 힘이라는 한 권의 저작에 담겼다는 사실은 아렌트의 미국혁명론과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의 연관을 상상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주디스 버틀러(2006)는 신적 폭력에 의해 신화적 폭력과 함께 모든 실정법의 파괴를 계획하는 것처럼 보이는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에 대해 아렌트가 비판적이었다고 논하면서 신적 폭력을 비폭력으로 해석한다. 게다가 페그 버밍엄(2010)에 따르면, 아렌트에서 권력/권위의 대비는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에서의 신적 폭력/신화적 폭력의 대비를 계승한 것이다. 이에 대해 리처드 번스타인(2013)은 신적 폭력을 비폭력으로 파악하는 해석을 비판하면서 아렌트에 의한 폭력/권력이라는 이분법을 과장되게읽음으로써 이러한 연관을 비판한다.

또한 이 글에서는 이하에서 다음의 순서로 논의를 진행한다. 우선, 아렌트에게 미국 혁명은 헌법 제정 그 자체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 구조 전체에 있어서 신화적 폭력의 순환을 파괴하는 적어도 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던 사건이었음을 그려낸다. 그 다음, 미국 혁명의 헌법제정론에 초점을 다시 맞추고, 그것이 벤야민의 신적 폭력에 대응한다고 논함으로써, 헌법 제정론이 (적어도 기존의) 언어행위론적인 틀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아렌트가 벤야민을 계승하면서 언어에 주목했을 가능성도 조명될 것이다.

 

1. 신화적 폭력과 두 가지 혁명  

벤야민의 폭력론과 아렌트의 혁명론의 조응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벤야민의 신화적 폭력개념과 아렌트에게서 주목할 수 있는, 혁명에 붙어다니는 두 가지 악순환’(OR: 152, ÜR: 210)에 대한 시에예스에 의한 외관상의 해결책이며, 또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 악순환을 피한 적어도 피할 가능성을 숨기고 있었던 미국 혁명이다. 이하에서는 수많은 오독에 노출되어 온[주5] 미국 혁명론의 구조를 신화적 폭력개념과 대응시키면서 일별하고자 한다.

      [주5] 이러한 오독의 한 가지 유형은 호니그에 의해 전개된 것이며, 그것에 따르면 아렌트에 의한 해석에서 미국 헌법의 권위는 독립선언문의 행위수행성에 근거하고 있으며, “권력과 권위는 상호의존적이다”(Honig: 1991, 101)라고 하였다. 이것이 오독인 이유는 본론에서 논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의 아렌트 연구에서도 이런 호니그의 독해를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구체적인 문헌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때때로 언급하겠다).

우선 혁명의 두 가지 악순환이란 새로운 법(헌법)의 제정을 둘러싼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모든 실정법, 즉 인간이 만드는 모든 법이 그것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그 입법 행위 그 자체를 더 고차적인 법으로서 초월하는 외적인 원천을 필요로 한다”(ibid.)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헌법을 포함한 실정법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것은 헌법이나 실정법을 어떤 방식으로든 초월하지 않으면 실정법의 합법성은 다른 실정법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는 무한 후퇴에 빠지고 만다. 다른 하나는 모든 새로운 시작, 정치적으로 말하면, 바로 창설이라는 과제에 수반하는 논점 선취에 내재하는 악순환”(ibid.)이다. , 새로운 법의 제정에 의한 새로운 정치체의 창설은 그 합법성을 자신이 제정하는 법으로부터 획득한다는 논점 선취이다. 이 악순환에 대해 시에예스는 헌법을 제정하는 권력(pouvoir constituent)’헌법에 의해 제정된 권력(pouvoir constitué)’을 구별한다는 해법을 제안했다. 이 해결책에 따라 헌법을 제정하는 회의의 권력헌법에 의해 제정되는 권력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필연적으로 헌법에 앞서기 때문에 그 자체는 결코 헌법에 근거하여 제정될 수 없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게다가 법과 권력의 타당성은 국민의 의지에 기초하며, “국민의 의지는 모든 정부와 모든 법의 바깥쪽에, 또 초월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OR: 154, ÜR: 211). 그러나 아렌트에 의하면, 시에예스의 해결책은 모든 법과 정부의 기초를 국민의 의지라는 모래 위에 쌓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 동안에도 그 헌법은 안정되지 못하고, 혁명 전의 ‘1인 지배, 법의 지배가 아니라 다수자에 의한 지배로 대체한 것으로만 끝났다.

이 같은 시에예스의 해결책은 벤야민이 신화적 폭력이라고 부르는, ‘법조정적=법정립적 폭력법유지적=법보존적 폭력의 상호 침투적 이중성에 대한 외관상의=겉치레의=보여주기식의 해법일 수 있다.

먼저, 벤야민에 따르면, “법조정=법정립이란 권력의 조정=정립이며, 또 그런 한에서 폭력의 직접적인 현시(Manifestation)의 한 이다”(GS. II-1: 198).[주6] 스스로의 다산을 자랑하는 니오베가 레이트와 그 두 기둥의 자식들에 의해 교만의 죄로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열네 명이나 되는 자식의 죽음의 책임을 짊어짐으로써 영구적인 죄 많은 삶을 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처럼, 권력에 앞서 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조정=정립하는 권력은 바로 그 법조정=법정립에 있어서 현시하고, 그 현시에서 법을 조정=정립한다. 그것은 그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이 스스로를 법적 근거로서 현시하게 하는 폭력이지만, 이 폭력은 그 법조정=법정립에 의해 진정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조정=정립된 법이 조정=정립되는 것에만 머물며 법으로서 시행되지 않고 유지=보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일찍이 파스칼이 통찰한 힘없는 정의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주7] 그런 의미에서 법유지적=법보전적 폭력은 법조정적=법정립적 폭력에 침투하고 있다. 또한 조정=정립되는 법률과 조정=정립하는 권력의 동시적인 현시가, 혹은 이 현시에 다름 아닌 법조정적=법정립적 폭력이 그 법을 시행함으로써 유지=보존될 수밖에 없다면, 그 시행이라는 유지는=보존은 그때마다 폭력적인 현시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법조정적=법정립적 폭력은 법유지적=법보존적 폭력에 침투하고 있다. 벤야민 자신은 반드시 명시하지는 않지만, 데리다, 버틀러, 번스타인이 지적했듯이 법유지적=법보존적 폭력과 법조정적=법정립적 폭력은 상호 침투적인 것이다.

      [주6] 폭력 비판론(Zur Kritik der Gewalt)에서의 Gewalt라는 단어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 단어 자체는 폭력적인 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논의를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일단 폭력의 의미로 해석하지만, 이른바 이 단어 자체가 이 논문에서의 벤야민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데리다의 지적을 인용해 두자. “그것[Gewaltviolence로 해석하는 것]은 독일인에게 게발트가 정통적인 권력, 권위, 공공적 힘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정당하게 평가하지는 않은 해석이다. [예를 들면] Gesetzgebende Gewalt란 입법 권력을 을 가리킨다. 따라서 게발트는 폭력인 동시에 정통적인 권력, 정의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진 권위다. 정통적인 권력의 규정(법률)의 힘과 이 권위를 설정한, 근원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폭력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자크 데리다, 법의 힘14). 또한 아렌트는 pouvoir constituentkonstituierende Macht(ÜR : 209), violenceGewalt로 번역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Gewalt라는 단어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고는 보기 어렵다. 또한 Gewaltviolence, 나아가 일본어폭력이라는 단어 각각의 역사, 용례, 함의에 대한 분석은 다음의 연구에서 더욱 자세하게 논의되고 있다(丸山 : 2016, 309-311).
      [주7] 다만, 중요한 것은 아렌트의 기획이 법조정으로 끝나 법유지에 이르지 못한 다양한 혁명적인 사건을 그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과 함께 과거에서 떼어내어 현재에서 새롭게 풀어내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기획은 역사의 천사로 상징되는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해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아렌트의 진주 채취의 태도를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하의 연구를 참조하기 바란다(cf. 柿木2021, 青木 : 2022).

헌법을 제정하는 권력/헌법에 의해 제정된 권력이라는 시에예스에 의한 구별은 헌법을 제정하는 권력이 자신의 구체화하는 법률과 함께 스스로를 구체화하는 것을 폭로한 점에서, 조정=정립되는 법과 조정=정립하는 권력의 동시적인 현시및 그 폭력성을 선취한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아렌트가 주의 깊게 논하듯이, 시에예스가 국민의 의지에 근거한 것은 헌법이나 그것을 제정하는 권력(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와 모든 법”(OR: 154, ÜR: 211)이다. “권력과 법은 함께, 국민에게라기보다는 국민의 의지에 그 닻을 내렸다”(ibid.). 그러므로 조정=정립되는 법(제정되는 헌법)조정=정립하는 권력(제정하는 권력), 나아가 그 무수한 조정=정립에 다름 아닌 법유지=법보존은 국민의 의지에 기초하는 것으로 폭력성을 피할 수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시에예스의 해결책은 유효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이론적으로 말하면, 창설의 난제, 즉 새로운 법과 새로운 정체를 설립하는 난제에 대한 시에예스의 해결책이, ‘민중의 제국이 아니라 법의 제국’(해링턴)이라는 의미에서의 공화국의 설립으로 귀결되지 않고, 또 귀결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OR:155, ÜR:212). 시에예스의 해법은 법조정=법정립법유지를=법보존을 흐르는 모래와도 같은 국민의 의지에 기초함으로써 그 폭력성과 함께 헌법으로부터 실효성도 안정성도 빼앗고 그런 의미에서 헌법의 뼈대를 없애고 말았다. “프랑스 혁명이 한창일 때에도 헌법은 속속 등장했지만, 권좌에 있는 사람들은 혁명의 법이나 법령을 무엇 하나 시행할 수 없었다”(OR: 154, ÜR: 211f.).

아렌트가 혁명론의 전통에 반하여 미국혁명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것이 위와 같은 프랑스 혁명의 크고 치명적인 불운”(OR: 156, ÜR: 214)을 회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역사적 상황이라는 행운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혁명의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혁명에 대하여가 이러한 미국 혁명의 성공(또 그 위에서의 실패) 이야기를 그린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혁명의 구조적인 의의가 두드러지는 것은 프랑스 혁명뿐만 아니라 신화적 폭력과의 대비에 있어서이다. 미국 혁명은 실정법의 뼈대를 없애지 않고 신화적 폭력을 극복했다 적어도 극복할 수 있었다 는 것이다. 

미국혁명의 구조를 아렌트는 크게 두 단계, 즉 헌법의 제정(법조정=법정립)과 헌법의 유지(법유지=법보존)라는 두 단계로 구별하여 분석하고 있으며, 어느 단계에서든 미국혁명은 신화적 폭력을 피한 것처럼 보인다. 첫째, 미국혁명에 있어서 헌법을 제정하는 권력은 어떠한 법률이나 헌법에도 기초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관한 어떠한 심각한 의문도 생기지 않았다”(ibid.). 그 배경에는 식민자들이 수많은 작은 자치체로 조직되어 있고, 그러한 자치체가 잉글랜드와 대립하기 전부터 뿌리내리고 있었다고 하는 행운이 있었다. “혁명은 18세기의 말로 하면 사람들을 자연상태로 던져 넣지 않았다”(ibid.). 게다가 미국 혁명가들은 미국 헌법을 제정할 때 주 정부나 그 하부단체를 폐지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정통성을 주 정부나 하부단체로부터 끌어냈다. , 미국 헌법의 제정은 주 헌법의 제정을 전국 규모로 반복한 것이며, 헌법을 제정하는 회의는 주 정부나 하부단체에서 선택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혁명이전, 심지어 신대륙으로의 식민이전의 메이플라워 서약으로부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상호적인 약속이나 서약에 의해 자신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to combine themselves together)”에 대한 확신이 이미 식민자들에게 침투해 있었다는 경험에 뿌리를 둔 해결법이었다(cf. OR : 169f., vgl. ÜR: 228ff.). “어떠한 심각한 의문도 생기지 않았다라고 아렌트가 표현하듯이, 이러한 미국 헌법의 제정은 헌법을 제정하는 권력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천적으로, 프래그머틱하게 해결하는 것이었다고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주8]

      [주8] 헌법을 제정하는 권력의 문제에 대한, 미국 혁명가들에 의한 해소법을 이 글에서 프래그머티즘적이라고 굳이 형용하는 것은 단순히 결과를 중시하는 실용주의나 실제주의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아렌트는 혁명에 대하여에서 혁명기의 미국적 마음가짐(American frame of mind)”프래그머티즘적이라고 평하는 것이 아니라 “‘책상의학문(bookish learning)이나 계몽 시대의 결과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실천적인practical 경험의 결과이다”(OR : 211, ÜR : 282)라고 논하지만, 미국 혁명가들을 다음과 같이 평하기도 한다. “창설의 아버지들이 품고 있던, 철학적인 일반화에 대한 일정한 불신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이 영국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의 요체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서적을 한 번만 읽어봐도 밝혀지는 것은 그들이 구세계의 동료들보다도 고대와 근대의 현명함으부터 배우고, 그리고 오히려 행위의 지침으로서 [고대나 근대의] 서적에서 조언을 구했다는 것이다”(ibid.). 아렌트는 이러한 철학적 일반화에 대한 불신이 혁명정신의 개념화를 방해하고 그 망각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논하는 한편, 역시 헌법을 제정하는 권력의 이론적, 철학적 해소에 구애받지=집착하지 않은 것이 미국 혁명을 모종의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혁명기의 미국적 마음가짐을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논의는 단순히 행위에 의한 공적, 정치적인 참여를 찬양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이론과 실천의 상호작용을 재파악하는 시도로서 다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둘째, 조정과 법유지는 상호침투적이며, 헌법의 제정이 순수하게 제정으로만 끝나는 것은 단순히 그 제정의 실패를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미국 헌법의 제정(조정)의 역학은 그 유지(유지)의 단계에서는 기능하지 않으며, 이에 대해서는 미국혁명가들도 자각적이었다. “상호적인 약속에 의해 구속되고 서약에 의해 구성된 정치체에 사는 사람들에게 뿌리내린 권력은 하나의 혁명을 수행하기에는 충분했다 하더라도 영구적 동맹을 창설하는 것, 즉 새로운 권위를 발견하는 데에는 결코 충분하지 않았다”(OR : 174, ÜR : 236). 미국 헌법의 유지에 관한 아렌트의 분석은 다음과 같이 더 복잡하지만, 역시 법유지적 폭력을 피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아렌트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 처음으로 프랑스에 못지않게 미국에서도 모든 실정법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절대자의 필요”(ibid.)에 직면했다. 다만, 법과 권력의 원천을 모두 사람들의 의지라는 절대자 이 발상은 그 의지가 법인 신의 유사=닮은 모습”(OR : 175, ÜR : 237)에 뿌리를 둔다 라고 자리매김한 프랑스 혁명가들과는 달리, 미국 혁명가들은 권력의 원천과 법의 원천을 구별했다. , “권력의 원천은 아래에서부터, 즉 사람들의 풀뿌리로부터 생겼으며, 법의 원천은 위의, 즉 어딘가 고차적이고 초월적인 영역에 자리잡고 있었다”(ibid.). 그것은 프랑스 혁명처럼 실정법의 권위를 사람들의 의지에 기초하는 것을 막고는 있지만, 새로운 실정법의 권위의 원천에 신의 존재 불사(不死)의 영혼내세에서의 보답과 처벌”(OR : 182f., ÜR: 239) 을 상정한다는 혁명 이전의 발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권위의 원천이 되고 인간이 만든 법에 타당성을 부여하려면 제퍼슨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법자연의 신을 추가해야만 했다”(ibid.).

아렌트는 미국혁명가들에게 실정법의 권위의 원천을 신이나 고차적인 법에서 찾는 것이 중요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미국혁명의 이른바 성공비결 나아가 실패의 요체 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 그것은 즉, 미국 헌법이 숭배되기 시작했다”(OR:191, ÜR:255)라는 것이다. “새로운 공화국을 위해 안정성을 보장한 것은 불사의 입법자(Immortal Legislator), 내세에서의 보답의 희망이나 벌의 두려움, 혹은 독립선언의 전문에서 언급된 의심스러운 진리의 자명함이 아니라 창설 행위(the act of foundation) 그 자체가 포함하고 있던 권위였다고 결론짓고 싶어진다”(OR:191, ÜR:256. 강조는 필자).[주9] 권위란 무엇인가[권위란 무엇이었는가]에 의하면, ‘권위(authority)’란 강제도 폭력도 설득도 없이 사람들이 스스로 복종하는 인물이나 사물에 귀속되는 힘이나 성격이었지만,[주10] 미국 헌법은 사람들에게 숭배되기 시작함으로써 어떤 의미에서의 권위를 획득하고, 그 권위에 의해 어떤 의미에서 유지되어 왔다. 

       [주9] 이 글에서도 비판하듯이, 호니그는 “~라고 결론짓고 싶어진다(one is tempted to conclude that)”라는 대목을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형태로 이 구절을 인용하고, 아렌트가 권위의 원천을 독립선언문 서문의 행위 수행성이나 그것에 의해 생겨난 권력에서 찾아내고 있다는 논거의 하나로 삼고 있지만, 이 구절이 단순히 아렌트의 독립선언문 해석의 본뜻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石田雅樹도 저서 속에서 “~라고 결론짓고 싶어진다라고 하는 대목을 생략하는 형태로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cf. 石田 : 2009, 184). 石田는 호니그와는 달리 아렌트의 미국혁명론에서 “‘헌법’constitution을 정당화하고 권위를 증여하는 것은 헌법이라고 쓰인 문서 그 자체, ‘창설행위’ constitute 그 자체에 대한 숭배였다”(ibid.)라고 한 다음, 창설자들이 로마적인 권위모델에서 벗어나 미국적 문맥에서의 권위’”(石田 : 2009,186), “‘시작원리의 동일성에 근거한 권위모델”(石田 : 2009, 185)을 창출했다고 논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石田의 해석은 이 글에서도 논하듯이, “글로 쓰인 문서 그 자체로서의 헌법이 존경받기 시작하고 계속 존경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창설 행위 그 자체는 망각되어 버렸다”(cf. OR : 208, 212)라는 논의 및 이 논의에 관련되는 또 하나의 “~라고 결론짓고 싶어진다”(OR : 196)를 도외시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해석이다.
       [주10] 과거와 미래 사이권위란 무엇인가(권위란 무엇이었는가)에 따르면, ‘권위는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권력이나 폭력으로서 오해되고 있지만, 강제가 작동하면 권위는 손상되기 때문에 폭력은 있을 수 없으며, 대등성을 전제로 하는 설득은 권위가 요구하는 위계와 양립하지 않기 때문에 폭력이나 설득, 권력으로부터 구별된다(cf. BPF, 92). 또한, 아렌트가 이 논문의 서두에서 강조하듯이, 이 논문의 물음은 권위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권위란 무엇이었는가라는 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아렌트가 권위란 무엇이었는가라고 묻고, 권위의 본질을 묻지 않는 것은, 권위라는 것의 경험이 이미 상실되어 있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더 이상 우리는 실제로 권위가 무엇인지를 아는 위치에 있지 않기”(ibid.) 때문이다. 이 논문은 혁명에 대하여전에 쓰였지만 독립선언문이나 미국 헌법에 의해서도 로마적인 권위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이 책의 분석과 일치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그러한 숭배의 대상은 당초 쓰인 문서 그 자체(the written document itself)”로서의 헌법(constitution)인 동시에 창설 행위(act of constituting)’였지만,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사건 그 자체 새로운 정치체를 숙의에 의해서 창설한 사람들 에 관한 상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 의해서, 이 행위의 실제 결과를, 즉 그 문서 그 자체를 경건한 경외의 아우라로 감싼 것이며, 이 아우라가 그 사건과 문서의 양쪽 모두를 시간의 공격과 변화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해 왔다고 결론짓고 싶어진다”(OR:196, ÜR:262. 강조는 필자). 그러나 실제로는 혁명가들을 창설 행위로 이끈=몰아간 혁명의 정신에 대해 지속적인 제도를 부여하는 것 나아가 철학적인 일반화에 대한 일정한 불신”(OR:211, ÜR:282) 때문에 혁명의 정신을 개념화하는 것 에 미국 헌법이 실패했기 때문에, 창설 행위나 그 정신은 망각되고 말았다. 미국 헌법은 인민에게 투표함 이상의 공적 공간선거일 외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공적으로 표명할 기회”(OR: 245, ÜR: 324)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공화주의자가 되고, 시민으로서 행위할”(ibid.) 수 있었던 공간이나 기회란 워드나 타운 홀 미팅을 포함한 크고 작은 여러 공적 공간이었지만, 이러한 제도는 미국 헌법에 포함되지 않았다. 제퍼슨이 꿈꾸었듯이, 그러한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혁명의 정신을 체현하고, 각 대표를 결정하고 정기적으로 미국 헌법을 수정하고 재구성한다는, “미국 혁명의 진로에 입각한 행위의 전 과정의 정밀한 반복”(OR: 226, ÜR: 301)[주11]을 계속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반복이야말로 미국 헌법이 계속 창설되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또한 그 유지에 의해서만 창설이 진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창설과 유지의 일치”(OR: 194, ÜR: 260f.)이며,[주12] 진정으로 로마적인 권위일 수 있었다. 이 가능성은 어쩌면 벤야민이 간파한 신화적 폭력을 비폭력적 법조정법유지의 상호 침투로, 창설과 유지의 일치로서의 권위로 반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었을까.

       [주11] 이 반복을 하이데거의 반복(Wiederholung)’이나 데리다의 되풀이(itération)’ 사이에서 특징짓는 것은 흥미로울 것 같지만, 이 글에서는 상세하게 들어갈 수 없다. 덧붙여 독일어판에서는 »Wiederholen «에 대응하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다(vgl. ÜR : 301f.).
       [주12] 증폭에 의한 창설과 유지의 일치(the coincidence of foundation and preservation by virtue of augmentation)”라는 대목은 독일어판에서는 창설과 유지가 상호 귀속되는 것, 이 상호 귀속이 창설의 증폭속에 생생하게 나타나 있는 것(Daß Gründenund Erhalten zusammengehören und daß dies Zusammengehören sich lebendig in » Vermehrungen « der Fundamente manifesti)”라고 번역되어 있으며, 조정과 법유지가 증폭에 있어서 상호 침투한다는 점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2. 신적 폭력과 시대의 새 질서

2-1. 자의성의 망각

이상과 같이, 헌법 제정의 두 가지 악순환을 둘러싸고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이 각각 걸어온 길 전자는 그 폭력성과 더불어 헌법의 뼈대를 제거했고, 후자는 새로운 헌법의 권위를 걸고 넘어졌다=관건으로 삼았다 이 벤야민의 신화적 폭력론에 호응하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미국 혁명은 헌법에 의한 통치를 유지하면서 신화적 폭력의 해결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미국 혁명의 창설 행위가 성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분명히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언어가 가진 힘의 일단을 부각시킬 수 있다.

버틀러는 이미 다음과 같이 논한 바 있다. “[아렌트에 따르면] 벤야민은 국가의 창설이 비강제적인 시작일 수 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그 근원에 있어서 비폭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Butler: 2006, 207).[주13] 이러한 해석에는 앞서 말한 대로 미국 헌법 제정 문제에 대한 프래그머티즘적인 해결을 감안하면 수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아렌트에서 폭력개념이 수단화를 수반하는 강제를 의미하고, 그리고 헌법의 제정이 복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어떠한 근거도 없이 약속이나 서약, 합의에 의해 수행된 것은 강제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비폭력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번스타인이 버틀러에 반해 벤야민의 폭력론과 아렌트의 정치이론의 연관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신적 폭력을 비폭력으로 파악하는 버틀러의 해석에 대한 비판과 연동되어 있다. 그렇지만 미국 혁명에서 헌법 제정의 비강제성 때문에 비폭력성이라는 해석 버틀러와 번스타인은 이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성급한 계책=섣부른 판단일 것이다.

       [주13] 정확히 말하면 버틀러는 이 대목에서 아렌트의 폭력에 대하여를 참조하지만, 인용 대목의 내용이 혁명에 관하여의 논의를 수용한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버틀러의 목적은 우선 벤야민의 신적 폭력을 개개인이 행위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고독하게 격투해야 하는 신의 계율, 그런 의미에서 비폭력적이고 윤리적인 폭력으로 해석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 격투를 총파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강제를 거부하는 숙고적 자유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명령과 싸우는 개인이 총파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에 준하는 것은, 양자 모두 일정한 강제를 거부하고, 또 그 거부에 있어서 인간적 행위의 기초에 유일하게 합당한 숙고적인 자유를 행사하기 때문이다”(Butler, 2006 : 219).

아렌트는 혁명에 대하여5장 창설 II : 시대의 신질서(Novus Ordo Saeclorum)의 종반에서 다음과 같이 논한다. “어느 정도의 완전한 자의성(a measure of complete arbitrariness)을 그 자체에 수반하는 것은 바로 시작의 본성에 존재한다”(OR : 198, ÜR : 265).[주14] 이 자의성은 정치적 행위가 시간의 균열”(OR : 197f., ÜR : 264)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라고도 논할 수 있지만, 현재의 맥락에서는 시작을 정치적 행위 일반으로 확대하지 않고, “근대적 조건 하에서 창설 행위는 헌법 작성과 동일”(OR : 116, ÜR : 160)하다는 점을 중시하자. 이로부터 귀결되는 것은 복수의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나 서약, 합의에 근거한 헌법 제정조차도, 행위이기 때문에 자의성을 피할 수 없으며, 또한 그 자의성은 그 행위에 의해 조정=정립된 헌법그 자체에 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헌법 제정 문제에 대한 미국 혁명가들의 프래그머티즘적인 해결은 이 자의성, 조정적 폭력을 근본에서부터 불식시키기보다는 역시 이 자의성에 어떠한 심각한 의문도 생기지 않도록하려는 것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벤야민이 폭력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언어합의의 영역을 어디까지나 사인간의 관계”(GS. II-1 : 192)의 일례로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렌트도 합의를 형식적인 절차로 환원하지 않는다. 이른바 국왕이나 귀족의 권력합의에 근거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단순히 합의에 뿌리를 둔 것일 뿐이며, “가짜이고, 찬탈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반대로 미국 혁명가들의 권력은 호혜성과 상호성”, “서로에 대한 신뢰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OR : 173, ÜR : 235f.). 이 신뢰가 당시의 미국에 이미 존재하고, 그것에 근거하는 숙의에 의한 해결이 도모된 것은 역사적, 우연적, 그리고 일회적인 사건이며, 안이한 철학적 일반화 아렌트의 공공성론의 숙의적 해석 같은 를 허용하지 않는다.[주15] 

       [주14] 梅木達郎아렌트의 시작이, 데리다가 기술하는 법창설의 힘의 일격’, 즉 법의 근원에 있는 퍼포머티브한 사건의 특징을 말하고 있다”(梅木 : 2002, 151)라고 말하면서, 아렌트에 있어서의 시작의 폭력성이나 자의성에 주목한다. 혁명에 대하여시작을 안이하게 정치적 행위 일반의 그것으로서 파악하지 않고, 우선 헌법 제정의 그것으로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을 중시하는 점도 유의미하다. 다만, 아렌트 해석으로서 호니그가 지적하지 않는 논점을 몇 가지나 들고 있는 한편, 미국 헌법의 권위를 그 권력에 근거하게 하는 호니그의 해석에 의거하고 있다(cf. 梅木 : 2002, 166).
       [주15] 숙의적 해석(deliberative interpretation)단초가 된 것은 하버마스의 논문(1976)으로, 이를 몇몇 논자가 계승하는 형태로 숙의적 해석이 아렌트 연구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러나 숙의적 해석은 하버마스 자신의 토의이론에 비추어 보더라도 설득력이 없다. 하버마스의 아렌트 해석이 곡해혹은 잘못 파악한 것이라는 점은 이미 마가렛 캐노번(1983)이나 舟場保之(1998)에 의해 지적된 바 있는데, 하버마스 자신도 다음과 같이 논할 때, 이 점에 반쯤 눈치채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버마스는 앞선 논문에서 아렌트의 실천철학의 현상학적인 방법이 불충분하다고 하면서도 그 의도가 상처받지=손상되지 않는 상호주관성의 보편적인 구조들을 의사소통적 행위 혹은 실천의 형식적인 특징들에서 읽어내려는 것이라고 논한다. 주지하듯이, 하버마스는 이 상처받지=손상되지 않는 상호주관성의 보편적인 구조들을 자신의 토의이론, 공개성’ ‘평등성’ ‘비폭력성’ ‘성실성을 조건으로 하는 이상적 발화상황’(나중의 토의의 구성적 규칙)으로서 정리하는데, 아렌트의 의도가 토의의 구성적 규칙의 도출일 수 없는 것은 혁명에 대하여에서 가장 분명하듯이, 그 실천철학이 역사상의 구체적인 실천이나 사건, 경험이나 사고를 기술하는 데에 철저하기 때문이다. 舟場“‘아렌트가 말하고자 한 것보다 하버마스의 곡해, 평가해야 할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논하는 것처럼, 만약 아렌트의 숙의적 해석이 정치철학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서 전개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서는 아렌트를 더욱 곡해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현대의 토의이론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더구나 혁명가들이 헌법 제정의 자의성, 그 법조정적 폭력에 대처한다고 해도, 그것에 스며들어 있는 법유지적 폭력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호니그처럼 아렌트의 설명으로는 권력과 권위는 상호의존적이다”(Honig: 1991, 101)라고 논하면서 권위의 원천을 독립선언문 서문의 행위 수행성이나 그로 인해 생겨난 권력에서 찾음으로써 법유지적 폭력의 문제는 법조정적 폭력의 문제와 함께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에 대하여의 독해는 단적으로 오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헌법을 조정한 자신들의 상호적인 약속이나 서약은 그 약속이나 서약에 참여하지 않은 만인을 그것에 근거한 헌법에 의해 구속하는 것(헌법을 시행하고 유지하는 것)에 있어서 불충분하다는 것, 즉 법조정 그 자체에 내재하는 법유지적 폭력에 자각적이었기 때문에, 미국 혁명가들은 헌법을 조정하는 권력과 그것을 유지하는 권위를 구별하고, 권위를 걸고 넘어진=관건으로 삼은=돌부리로 삼은 것이다(cf. OR: 174, vgl. ÜR: 235). 

이러한 관건을 아렌트는 최대한으로 평가한다. 그것이 관건이었던 것은 신이나 종교, 태고의 관습의 후광을 빌리지 않고 새로운 헌법을 세우는=수립하는 것이 혁명의 임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상호적인 약속이나 서약에 의해 세워진 새로운 헌법의 권위를 미국 혁명가들이 최종적으로 초월적인 신의 권위에 기초=정초한다는 혁명 이전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아렌트가 이 관건을 칭찬하는 것은, 관건이 권력과 권위를 구별한 미국 혁명가들의 다음과 같은 자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계약도 그 계약이 뿌리를 둔 약속도 [헌법이나 헌법에 의해 수립되는 세계의] 영속성을 보증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OR: 174, ÜR: 236)는 것, 바꿔 말하면 약속이나 서약에 의해 법조정의 강제성을 회피한다고 해도 법조정에 스며들어 있는 법유지의 자의성은 해소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러므로 법조정적 폭력의 해결에만 주목하는 해석은 법조정에 스며든 법유지적 폭력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프랑스 혁명가들의 자각 헌법의 뼈대를 제거했다고는 하나, “모든 정부와 모든 법을 국민의 의지에 기초하게 함으로써 법조정적 폭력과 함께 법유지적 폭력을 해소했다 에도 미치지 못한다. 벤야민은 권력에 의해 보증되는 법적 계약이 그 권력을 계약에 의해 만들어낸 폭력을 대리하고 있다는 것, 법제도에서의 폭력의 잠재적 존재”(GS. II-1: 190)를 폭로하면서, “오늘날 의회가 잘 알려진 한심한 구경거리의 양상을 보이는 것은, 스스로가 그 존재를 짊어지는 혁명적인 힘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ibid.)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아렌트가 미국 헌법의 권위를 둘러싼 혁명가들의 관건을=돌부리를 강조하는 것은 혁명가들이 법제도에 있어서의 폭력의 잠재적 존재를 망각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혁명이 이 법유지적 폭력이나 그 자의성을 피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것은 법유지적 폭력의 자의성을 망각하는 것일 수 없다. 그 망각은 의회와 법제도의 부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유지적 폭력의 자의성을 망각하지 않고 그 폭력성이나 자의성을 극복한다는 과제를 아렌트는 자신의 미국 혁명론에 부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주16]

       [주16] 梅木도 아렌트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이 논한다. “미국 혁명이라는 시작의 사건은 폭력의 문제를 단숨에 매듭짓는다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재제기하는 것임이 밝혀졌다. 그것은 아렌트가 그려내고자 했던 것처럼 폭력의 연쇄를 끊는 이상적인 시작점이 아니라 그 자체의 폭력적인 구조를 온존하고 있으며, 폭력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와 폭력의 은폐의 조작에 열려 있다”(梅木 : 2002, 166).

 

2-2. ‘말이 살이 되었다 

말이 살이 되었다[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요한복음114절에 등장하는 이 구절을 아렌트는 권위의 상징처럼 인용한다. 신이 부여한 권리에 의해 주교와 교황, 절대군주의 권위를 정초한 구세계만이 아니다. “모든 정부와 모든 법을 국민의 의지에 기초하게 만든 프랑스 혁명조차도 법을 정하는 신의 의지의 닮은 모습에서 그 의지를 포착했다(cf. OR : 175, vgl. ÜR : 237). “‘말이 살이 된[말씀이 육신이 된]후에 지상에서의 신적인 절대자의 수육, 우선은 그리스도 자신의 대리인에 의해서, 즉 주교와 교황에 의해서 대리되고, 그 다음에 신이 부여한 권리에 의해서 지배적 지위를 주장한 국왕에게 계승=인계되며, 마지막으로 전제 군주제가 그것에 못지않게 절대적인 국민주권으로 이어졌다”(OR : 186, ÜR : 251). 게다가 혁명에 대하여서장의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논의된 이후, 이 구절은, 말에 있어서의 시작이나 그 폭력성과 함께 이 책 전체의 반주처럼 울려 퍼진다. “‘시작=태초에 범죄가 있다라는 확신은, 인간 사태事象를 나타내는 데 있어 자명한 타당성을 수세기나 유지해 왔지만, 그 타당성은 시작=태초에 말이 있다라는 요한복음의 첫 문장이 인간의 구제를 나타내는 데 있어 못지않은 정도였다”(OR : 10, ÜR : 21). 신의 말의 수육을 나타내는 앞의 구절은, 미국 혁명가들이 그 권위를 걸고 넘어진=관건으로 삼은=돌부리로 삼은 미국 헌법에서 권위의 어떤 상징이 되었을까?

혁명에 대하여라는 저작을 호니그와 마찬가지로 근현대 니힐리즘에 대한 응답”(Honig: 1991, 103)으로 파악한다면, 성경 문구에 초점을 맞추는 이 글의 해석은 기묘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이른바 신이 죽은 곳에서 어떻게 새로운 헌법의 정통성을 보장할 것인가, 이것이 신의 의지의 닮은 모습에서 국민주권을 파악한 프랑스 혁명에서도 질문되었다. 미국 혁명가들 또한 자신들이 조정한 새로운 헌법을 유지하는 권위를 유의미하게도 걸고 넘어지고=관건으로 삼고=돌부리로 삼고, 신의 권위에 의지하고 말았다. 그것은 단순히 주교나 교황, 절대군주 대신 새로운 헌법을 신의 권위에 정초했을 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질문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낭시와 라쿠-라바르트가 정치 신학적인 후퇴=물러섬의 문제로서 일찌감치 통찰한 것처럼, 신이나 인간이나 역사라는 초월이 정치적인 것의 근거로부터 물러나는 모양을 보면서도, “후퇴한=물러선 초월을 되찾는것이 아니라, 후퇴=물러섬을 통해서 어떻게 정치적 초월개념의 의미를 어긋나게 하고=바꾸고, 다시 벼려내고, 다시금 쟁점으로 삼아야 하는가라는 것”(정치적인 것의 후퇴=물러섬18)일 것이다.[주17]

       [주17] 필립 라쿠-라바르트/-뤽 낭시 지음, 柿並良佑 번역, 정치적인 것의 후퇴로부터의 인용이다. 이 논고는 정치적인 것의 후퇴(Le Retrait du Politique, Galilée, 1983)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글에서는 柿並의 번역을 참조한다. 정치적인 것의 후퇴정치적인 것을 다시 건다와 함께 정치적인 것에 관한 철학 연구 센터의 성과를 모은 것이며, 그 안에서도 그 문제의식이 명시되어 있는 논고가 위와 같이 번역되어 있다(정확히 말하면, 柿並에 의한 번역에는 정치적인 것의 후퇴라고 제목이 붙은 텍스트 외에 위 책에 수록되어 있는 토의서언보론=부록의 번역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 논고에 혁명에 대하여의 참조는 없지만, 두 저자는 아렌트에 있어서의 근거 부여=정초(fondement)’창설(foundation)’이라는 구별 독일어에서는 둘 다 Gründung이다 을 언급함으로써, 신은 아니지만 국민의 의지라는 초월자에 의해서 헌법을 이론적으로 근거짓는=정초하는 프랑스 혁명과, 헌법을 실천적으로 창설하려는 미국 혁명이라는 대비를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그것은 총장 시절에 자신의 존재론에 의해서 정치를 기초지으려고 한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러한 아렌트의 구별이나 대비를 마르틴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으로도 파악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후퇴라는 자신의 문제로 벼려내고 있다. 1980년대 초라는 매우 이른 시기에 쓰인 두 저자의 이 논고는 현재에도 혁명에 대하여를 다시 읽고 그 물음을 계승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미국 혁명에서 헌법을 창설하는 말이 모종의 권위를 띠기 시작한 것은 그것이 글로 쓰인 문장이 되며, 그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초월자의 권위 없이 우연히도 숭배되고 성전화되었기 때문이다(cf. OR : 191, vgl. ÜR : 256).[주18] 다른 한편으로, 헌법을 창설하는 말이 로마적인 권위가 되지 못한 것은 글로 쓰인 문장으로서의 헌법이 아직도 계속 숭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설 행위나 그 정신이 망각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 망각은 창설 행위나 그 정신의 개념화와 제도화에 실패한 혁명가들의 실수였다. 그러나 만약 개념화와 제도화에 성공했다면 후세 사람들은 창설 행위나 그 정신을 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자가 되어 시민으로서 행위할 수 있는 공적 공간에서 미국 혁명의 진로에 입각한 행위의 전체 과정의 정확한 반복”(OR : 226, ÜR : 301)을 계속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헌법을 창설하는 말이 [육신]”, 로마적인 권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반복에 있어서의 창설과 유지의 일치”(OR : 194, ÜR : 260f.)에 있어서였지만, 이 가능성이 실현되지는 않았다. 미국 혁명의 성공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그 실패에 숨겨진 가능성을 현재로 끌어올리는 것, 이러한 혁명에 대하여의 기획에서 그 실패담은 결코 단순한 후일담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첫째, “기억의 창고를 지켜보는 시인, “우리가 그것에 의해서 삶을 영위하는 말을=언어를 발견하고 창조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시인”(OR : 272, ÜR : 360)의 임무를 아렌트가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주19] 실제로, 이 책의 6. 혁명의 전통과 그 잃어버린 보물에 따르면, 1789년부터 계속된 파리 코뮌, 1871년의 파리 코뮌, 1905년과 1917년의 소비에트, 1918년의 레테, 그리고 1956년의 헝가리 혁명에서의 평의회는 격렬한 투쟁과 실패로 끝났긴 했지만, “행위의 기관일 뿐만 아니라 질서의 기관혁명 후에도 사람들이 공적, 정치적으로 계속 행위하고 참여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인 질서 을 확립하려고 했다(OR : 255, vgl. ÜR : 338). 미국 혁명은 워드나 타운홀 미팅이라는, 사람들이 공적으로 계속 행위언론할 수 있는 작은 공적 공간을 헌법에 포함시키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그 외의 혁명의 한 가지 예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미국 혁명을 그 가능성과 함께 새롭게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상의 거품처럼 떠올랐다 사라져버린 수많은 혁명이나 평의회를 그 새로운 말에 의해 다시 이야기하고, 망각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이바지한다.

       [주18] 독일어판에서는 이 숭배(worship)’에 해당하는 대목이 헌법의 성전화(» Heiligsprechung « der Verfassung)”라고 되어 있다(cf. OR : 191, vgl. ÜR : 255). ‘성전화(Heiligs prechung)’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는 무언가나 누군가에게 성스러움(heilig[keit])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며(예를 들어 대상이 인물의 경우는 열성列聖을 의미한다), ‘숭배보다 종교적 의미부여가 더 강하다. 문맥적으로 이 표현은 미국 헌법이 미국 혁명가들의 의도와는 달리 신의 권위나 진리의 자명함과 관계없이 숭배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른바 세속적인 성전화, 유사적인 재초월화 이른바 “(신의) 말이 살[육신]이 되었다“(사람의) 말이 신의 말처럼 살[육신]이 되었다처럼 역설적인 사태를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실현되지 못한 채로 남은 로마적 권위는 탈초월적이다.
       [주19] 이것 자체가 하이데거나 벤야민으로부터 아렌트에게 비판적으로 계승된 진주 채취의 태도이다. 특히 이러한 맥락에서는 미국 혁명이라는 로마적 권위의 창설에 실패한 사건을 과거로부터 끌어내어 프랑스 혁명을 효시로 하는 혁명론의 전통을 뒤흔들고 미국 혁명을 그 실현하지 않았을 가능성과 함께 현재라는 해수면에서 새롭게 풀어낸다는,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의 구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柿木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자유의 창설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렌트에 의한 혁명의 정의 중 하나이다. ‘근대의 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일깨우는 혁명의 역사라는 그녀의 말은 프랑스 혁명은 스스로를 로마의 회귀로 해석했다라는 말 등으로 표현되는 벤야민의 사상을 참조축의 하나로서 혁명을 구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柿木, 2021 : 289).

단순한 후일담이 아닌 것은 둘째, 그 미국 혁명론이 신화적 폭력의 반전 가능성을 둘러싼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혁명가들의 창설 행위는 만약 후세 사람들에 의해 계속 반복되었다면 신화적 폭력 조정적 폭력과 법유지적 폭력의 상호 침투 창설과 유지의 일치라는 의미에서의 로마적 권위로 반전시켰을지도 모른다. , 복수적인 사람들 사이에 비강제적으로 오가는=주고받는 공동의 숙의상호 서약의 힘에 근거해 여전히 자의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창설 행위는 후세 사람들에 의한 반복에서 계승되고 긍정되며 그 자의성으로부터 구제된다. “시작의 행위를 그 자신의 자의성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은, 그것이 그 안에 그 자신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OR : 205, ÜR : 273). 반복은 최초의 창설 행위로부터 자의성과 비강제성을 계승함=이어받음으로써 동시에, 헌법의 자의적이고 비강제적인 유지가 되고, 그 반복/유지 또한 반복의 반복, 반복의 연쇄에 의해 그 자의성으로부터 구제된다. 조정의 반복으로서의 법유지는 반복이 끊기는=단절되는 순간에 신화적 폭력으로 재반전되는 위험성을 계속 내포하고 있지만, 이 위험성, 나아가 창설행위와 자의성 시작범죄을 망각하는 곳에서 신화적 폭력은 본령을 발휘하고 의회와 정부는 부패한다.

이런 반전의 실패와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혁명 이야기의 주제는 여전히 창설행위다. 확실히 반복의 연쇄야말로 창설 행위를 그 자의성으로부터 계속 구제하는 동시에, 유지로서 법조정(창설 행위)을 반복해서 달성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반복의 가능성을 열어 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창설 행위이다. 아렌트가 원리(principle)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논하듯이 시작하는 자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행하고자 하는 것을 시작하는 그 방식(the way)이 그 기획에 가담하고 성취하기 위해 시작하는 자에게 가담하는 사람들의 행위의 법을 정한다. 그러한 것으로서 원리란 [시작하는 자의 행위에] 계속되는 행위를 고무하고, 행위가 계속되는 한 계속 현시된다”(OR : 205, ÜR : 273). “시작하는 자에게 가담하는 사람들이란 창설행위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 반복에서 창설행위의 방식’, ‘원리는 계속해서 현시되며, 그 방식이 창설행위에 계속되는=이어지는 행위, 그 반복의 방식어떤 종류의 을 정한다. 미국 헌법 창설의 방식’, ‘원리혁명에 대하여5장 말미에서 신화적 폭력의 파괴라는 벤야민의 모티브가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한 건축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수의 사람들의 공동〔의 힘〕에 의해 미국의 주춧돌이 세워졌다고 하는] 그 사건 자체가 결정지은 것은 바로 해밀턴이 강조한 것처럼, 사람들이 “실제로 숙고와 선택에 의해서 좋은 정부를 … 세울 수 있다”는 것이며, 또 사람들이 “정치적인 조직에 있어서 우연과 강제[자의와 폭력]에 영구히 의거하는 것을 운명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OR : 206, ÜR : 275).[주20]

       [주20] 영어판 혁명에 대하여에서 이 대목의 우연과 강제력은 독일어판에서는 자의와 폭력으로 번역되고 있다. 강제력뿐만 아니라 자의성에도 폭력성이 인정된다는 점, 또 그것들을 반복에 있어서 계속 극복할 가능성이 창설 행위에 의해 열렸다는 논지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공동의 숙의상호 서약의 힘이라는 비강제적인 방식으로 헌법 창설이 수행되고, 그 헌법이 글로 쓰인 문서로 만들어졌다. 이 사건은 한편으로 헌법이 비강제적인 방식으로 제정될 수 있는 것이라는 가능성을, 그러므로 헌법이 그 창설행위의 방식의 반복 워드나 타운홀 미팅을 포함한 크고 작은 다양한 공적 공간에서 각각의 대표를 결정하고 정기적으로 미국 헌법을 수정하고 재구성한다는 반복 에서 비강제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사건이 그 반복의 연쇄에서 그 방식이 계승됨으로써 그 자의성으로부터 구제되는 것처럼, 그 반복의 하나하나도 헌법의 재창설이기 때문에 자의성을 내포하면서 행해지고, 후속하는 반복에 의해 그 자의성으로부터 계속 구제된다. 그것은 또한 그 자의성 유지에 침투하는 법조정의 폭력 을 망각하지 않도록 의회와 정부를 부패로부터 막고 그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적 폭력폭력비판론에서 어떻게 제시되고, 또 해석자들에 의해 얼마나 다양하게 이해되고 있든, 그것이 다음의 구절을 핵심으로 하는 한, 미국 혁명의 창설 행위는 신화적 폭력을 파괴할 가능성, 즉 신적 폭력의 이름에 걸맞은 사건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신비한 법 형태에 속박된=매여 있는 이 순환을 타파함으로써, 즉 폭력에 의거하고 있는 법을, 똑같이 법에 의거하고 있는 그 폭력과 함께 폐절함으로써,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국가 폭력을 폐절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적 시대가 창출되는 것이다”(GS II : 202. 강조는 필자). 혁명에 대하여』 「5. 창설 II: 시대의 신질서에서 이 신질서는 창설행위가 조정한 헌법의 법질서인 동시에, 창설행위의 방식이 그것에 이어지는 반복의 방식을 정한다는 행위의 질서이기도 하다. , 자의적이고 비강제적인 창설행위(조정)는 그 무수한 반복이라는 법유지에서 법조정적 폭력과 법유지적 폭력의 상호침투를 반전시켜 신비한 법형태에 속박된=매여 있는 순환을 타파하는그런 힘이었다. 말이 살[육신]이 되었다.” 이 구절에서 상징되듯이, 미국 혁명가들조차 새로운 헌법의 권위를 신이라는 초월자의 이름 아래에 기초하고=정초짓고, 또 후세 사람들이 초월자의 위엄 없이 헌법을 숭배하기 시작하면서 헌법은 성전화되어 일종의 초월성을 부여받았다. 다만 복음서에서 이 구절이 세속을 속죄하는 자의 수육을 전하고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법질서에 내재된 폭력이라는 죄를 씻어내는 신적 폭력의 도래 가능성을 알리는 구절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며

이 글에서는 아렌트가 벤야민의 사색을 그 사후에 추적한 흔적의 하나를 타락한 언어에 아직도 남아 있는 힘이나 가능성을 둘러싼 것으로서, 폭력비판론혁명에 대하여사이의 조응에 찾아봤다. 아렌트에 의한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의 비교는 신화적 폭력에 대한 대처의 차이로서 더 선명하게 재서술될 수 있으며, 미국 혁명에서의 권력/권위의 구별은 법조정/유지의 문제로서 해석할 수 있다. 호니그를 필두로 하는 기존 해석에서는 아렌트의 미국혁명론은 법조정(나아가 헌법 제정 이전의 독립선언)의 문제로서 초점이 좁혀져 왔지만, 오히려 논의의 지점은 미국 헌법에서의 법유지의 문제이며, 새로운 헌법을 비폭력적으로 유지하는 권위를 둘러싼 미국 혁명의 돌부리=실패와 그것이 내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었다. 미국 혁명의 창설행위(조정)가 그 위에서 여전히 주제가 되는 것은 창설행위(조정)방식이 그것에 이은 무수한 반복(재창설유지)방식어떤 종류의 정하기 때문이다. 창설행위, 그 언어는 반복에 의해 그 자의성으로서의 폭력성으로부터 구제되는지의 여부를 분간할 수 없는 채로 이뤄지며, 성과에 있어서 하나의 사건으로서 그 방식이 반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개척한다=열어놓는다. 이러한 성과는 바로 새로운 헌법과 새로운 방식’(원리)이라는 이중적 의미의 시대의 신질서의 가능성의 개시=공개일 것이다. 그때 언어는 창설의 언어행위로서 복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그 자의적인 성과, 그 현시에 있어서 스스로를 따라서 오히려 현시 그 자체를 복수의 사람들과 나눈다(mit-teilen). 그것도 창설의 언어행위는 이미 달성된 것으로서 스스로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침 법조정이 법유지 없이는 달성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복수의 사람들 사이에 그 방식이 반복되고 나누어짐으로써 계속 달성되도록 그 가능성을 개시하고, 또한 법유지가 법조정의 연속인 것과 마찬가지로, 계속 반복되는 한, 반복의 하나하나에 계속해서 현시하는 것이다.[주21]혹은 더 정확하게는 어떤 언어도 자기 자신에 있어서 자기를 전달하고(mitteilen), 어떤 언어도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전달의 매체(das » Medium « der Mitteilung)이다. 중동태적인 것(das Mediale), 이것이야말로 모든 정신적 전달의 무매개성이며 언어이론의 근본문제이다”(GS. II-1 : 142). 벤야민은 언어일반론에서 이미 그렇게 간파하고 있었다.[주22]

        [주21] 언어가 사건으로 나타나고 현시하는 것 자체의 힘에 대해 논하는 것은 혁명에 대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서술되는 미국 혁명의 창설행위는 오히려 그 힘을 엿볼 수 있는 가장 단적인 구체적인 예 아마도 원현상(Urphänomene)’의 하나 일 것이다. 활동적 삶에서 아렌트는 폴리스가 행위와 말을 나누는 것(Teilnehmen und Mitteilen von Worten und Taten)”(Va : 247, vgl. Va : 249)의 장이었다고 논하면서 행위나 언론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행위는 일상다반사를 깨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돌진하지=나아가지 않으면 애초에 성립되지 않고, 거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상적 삶에 있어서 타당하고 척도가 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으며, 발생하는 것은 모두 일회적이고 독특하기 때문에, 더 이상 규칙 아래에는 포섭되지 않는다”(Va: 260f.). 일상성을 뒤흔들면서 나타나는 독특하고 일회적인 사건으로서의 언어 행위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활동적 삶에서 이 나눔은 archein(시작하다, 선도하다)prattein(인수=계승하다, 달성하다)이라는 행위의 이중구조로서 논의되지만, 혁명에 관하여에서는 이 행위의 이중구조가 반복(유지) 없이는 달성될 수 없는 창설행위(조정)로서 보다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는 일회적이고 독특한 행위의 의미원리를 계승하는 방식으로서, 특수를 규칙아래에 포섭하지 않고특수하게 의미라는 일반을 발견하는 반성적 판단이 논의된다.
       [주22] 이 글은 20211127일 열린 심포지엄 언어의 힘 : 벤야민 언어일반론과 철학자들(히토츠바시 대학 철학사회사상 세미나 주최, 일본 아렌트 연구회 및 철학 온라인 세미나 공제言語ベンヤミン言語一般論哲学者たち」 (一橋大学哲学社会思想セミナー主催, 日本アーレント研究会および哲学オンラインセミナー共済)에서 발표한 원고를 손본 것이다. 이 심포지엄의 발표자나 참가자, 특히 지정 질문자를 맡아준 柿木伸之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덧붙여 이 연구는 齋藤元紀 씨 및 梅田孝太 씨로부터 리처드 번스타인 폭력의 번역서를 기증받은 점 및 그 서평(アーレント・プラッツ6, 2021에 게재)을 쓴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씨름하게 되었다. 두 분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참고문헌

본문 속의 인용문은 일역본이 있는 것은 그것을 참고하지만, 모두 필자가 원문을 번역한 것이다. 또한 인용문 속 강조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모두 원문의 강조이며, 〔 〕 안은 필자의 보충이다. 또한 인용 원문인 아렌트 및 벤야민의 저작은 다음과 같이 약기하고 쪽수를 병기했다.

OR: On Revolution/ ÜR: Über die Revolution / Va: Vita activa / BPF: Between Past and Future / GS. II-1 : Gesammelte Schriften, Bd.-1

 

아렌트의 저작

Arendt, Hannah, The Human Condition, University of Chicago, 1958. 人間条件志水速雄訳, ちくま学芸文庫, 1994.

_____________, Vita activa oder Vom tätigen Leben, Piper Verlag GmbH, 1961. 活動的生森一郎訳, みすず書房, 2005.

_____________, On Revolution, Penguin Books, 1963. 革命について志水速雄訳, ちくま学芸文庫, 1995.

_____________, Über die Revolution, Piper Verlag GmbH, 1965.

_____________, Between Past and Future: Six Exercises in Political Thought, Penguin Books, 1961, 1968. 過去未来引田隆也齋藤純一訳, みすず書房, 1994.

_____________, Men in Dark Times, Steller Books, 1968. 時代阿部斉訳, ちくま学芸文庫, 2005.

 

벤야민의 저작

Benjamin, Walter, Über Sprache überhaupt und über die Sprache der Menschen. Gesammelte Schriften, Bd.-1, Suhrkamp, Frankfurt am Main, 1991.

ベンヤミン・コレクション1 : 近代意味, 浅井健二郎久保哲司訳, ちくま学芸文庫, 1995.

_____________, Zur Kritik der Gewalt, Gesammelte Schriften, Bd.-1, Suhrkamp, Frankfurt am Main, 1991.

ドイツ悲劇根源〉』 浅井健二郎訳, ちくま学芸文庫, 1999.

 

Bernstein, Richard J. Violence: Thinking without Banisters, Polity, 2013. 暴力すりなき思考, 齋藤元紀 監訳, 法政大学出版局, 2020.

Birmingham, Peg, On Violence, Politics, and the Law, The Journal of Speculative Philosophy, 24.1 2010.

Butler, Judith, “Critique, Coercion, and sacred Life in Benjamin’s ‘Critique of Violence’”, Political Theologies: Public Religions in a Post Secular World, Fordham University Press, 2006. (이 논문은 다음의 작품에 개정판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 번역도 출판되어 있는데, 이 글에서는 번역을 확인했을 뿐이다. cf. Butler, Judith, Parting Ways: Jewishness and the Critic of Zionism, Columbia UP, 2012. かれ, 大橋洋一まどか , 青土社, 2019).

Canovan, Margaret, A Case of Distorted Communication: A Note of Habermas and Arendt, Political Theory, 11.1, 1983.

Habermas, Jürgen, Hannah Arendt’s Communication Concept of Power, Social Research, vol. 44, 1977.

_____________, Bewußtmachende oder rettende Kritik : die Aktualität Walter Benjamins, Siegfried Unseld Zur Aktualität Walter Benjamins, Suhrkmp Verlag, 1972.

_____________, Consciousness-Raising or Redemptive Criticism: The Contemporaneity of Walter Benjamin, New German Critique, no. 17, 1979. 好村冨士彦 監訳, ベンヤミンの肖像, 西田書店,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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網谷壮介, カントの政治哲学入門, 白澤社, 2018.

石田雅樹, 公共性への冒険ハンナ・アーレントと祝祭政治学, 勁草書房, 2009.

梅木達郎, 脱構築公共性, 松籟社, 2002.

柿木伸之, 断絶からの歴史ベンヤミンの歴史哲学, 月曜社,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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舟場保之, 首尾一貫した H・アーレントの思想:「活動から共同体感覚までを批判する, メタフュシュ カ, 1998

丸山徳次, 暴力現象学的批判けて, 現象学科学批判, 晃洋書房, 2016(다만 이 책에 따르면, 12장은 佐藤三千雄 編, (永田文昌堂, 1994)에 수록된 것을 재수록한 것이다).

 

[조사를 포함한 심사를 거쳐 202299일에 게재 결정]

(히토츠바시대학원 사회학연구과 박사후기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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